
“길 잃은 자들 모두가 방황함은 아닐 터. 당황치 마시오. 우리는 돌아가리니.”

타고나길 붉은 기가 강한 피부는 질긴 가죽마냥 볕 아래서 반질반질하게 빛난다. 필요한 근육만이 적절하게 발달한 몸은 좌반신과 우반신의 균형이 맞지 않아, 어깨는 서로 높낮이가 다르고 척추는 미미하게 한쪽으로 틀어져 있다. 의식적으로 자세를 곧게 함에도 반듯하거나 안정적이기보다는 어딘가 경직되고 긴장감이 서린 인상이다.
간신히 어깨 위로 내려앉은 것을 하나로 모아 낮게 묶은 머리카락은 희끄무레한 빛으로 노파의 그것과 같은 푸석한 윤기가 감돈다. 어느 날은 옆머리 몇 가닥을 모아 땋고 또 어느 날은 묶은 머리를 둘둘 말아 경단 모양으로 고정하는 등,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묶는 방법은 달라지지만 머리카락이 뿔에 엉겨 거슬리지 않도록 늘 단정히 정리하곤 한다.
꼬리가 휑하니 빈 눈썹과 끄트머리가 늘어진 눈매 아래로 짙은 색이 들어간 안경에 가려진 눈동자는 붉은 테두리를 두른 녹색으로 이색의 대비가 이질적이다. 두터운 뿔과 꼬리, 몸 여기저기를 덮은 비늘과 푸른기를 띄는 혀 등이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조금이라도 쉬이 받아들여지고자 웃는 낯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대장일을 하다 달궈진 쇠를 잘못 짚는 일이 몇 차례인가 있어 양 손바닥은 화상이며 물집이 터진 자국으로 너덜너덜하다. 이제 와선 손바닥이 두꺼워졌는지 어지간히 총이 과열되어 뜨거워지더라도 데이는 일 없이 잘만 들고 있곤 한다.

타르바간 사가히 Tarbagan Sagahi
아우라 제라 부족 남성
31·199cm·157kg

" 향해야 하오, 발은. 언제나 심장이 있는 곳으로. "
자기 주관이 뚜렷해, 제 생각이 소수 의견에 머무르거나 심지어는 혼자뿐인 주장일지라도 이를 타인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며,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는다면 유혹이나 조롱, 협박 등에 굴하지 않고 늘 당당하고 곧은 태도를 유지한다.
" 친우를 도움, 같소. 내일의 나를 돕는 것과. "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 누군가 어려움을 겪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외면하기 어려워한다. 어느 때에건 본능적으로 주위 분위기를 살피며, 곤란해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곤 한다. 일견 손해 보기 쉬운 성격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미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둔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동조를 받아 최종적으로는 집단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둥, 이상적인 결과를 내는 일이 많다.
" 걱정은 없는 것. 맡기시오, 이 타르바간에게! "
말과 행동은 어눌하고 더듬거리면서도 여러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선택을 망설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은 좀처럼 드물며, 한 번 손댄 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흐지부지 끝내는 것을 못 참아 하기에 시작한 일은 대체로 성과로 연결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데에 능해 큰 무리가 없는 합리적 계획을 세우고, 인내심이 강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책임지고 완수해내어 한 번 일을 맡긴 사람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다.
- 어눌함
에오르제아에 도착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아님에도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의미야 전해진다지만 발음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못하고, 단어 단위로 어순이 제멋대로 흩어지곤 한다. 흥분할 때면 동방의 표현들마저 튀어나와,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머쓱하니 웃으며 몸짓을 더해 설명을 이어간다. 언어에 대한 능숙도는 낮은 주제에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자연스레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옛말이나 선인들의 격언 따위를 섞어 말하곤 한다.
- 사가히
아짐 대초원 서부에서 정착 생활을 하는 아우라 제라 부족으로, 정착을 하기 전까지는 식용할 수 있는 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 떠도는 생활을 했기에 부족 외의 피가 섞이는 일이 많았다. 때때로 아우라 젤라 외 타 종족의 특징을 띄는 듯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그 탓이다.
짐승을 사람과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짐을 옮기는 데에조차 짐승을 쓰지 않는다. 고기 역시 섭취하지 않기 때문에 식사는 오로지 식물과 곤충으로만 이루어진다.
자라며 체득해온 부족 내 관습의 영향으로 초코보 운송을 이용하지 않으며, 에오르제아의 인류로 여겨지는 민족들과 야만족으로 여겨지는 수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없다. 오히려 때론 수인들을 보다 친근히 여기는 듯하다.
- 잃어버린 기억
재해의 후유증인지, 달라가브가 떨어지고 사흘여만에 울다하 동부의 임시 보호소에서 깨어났으며, 7재해 직전까지의 기억이 분명치 않다. 어릴 적 자라난 초원의 풍광에 대해서는 아득한 낯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먼 동방에서 어쩌다 에오르제아까지 오게 되었는지, 또 그 전엔 무엇을 하고 지냈고 후엔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를 물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양 고개를 기울이며 애매한 미소만 짓곤 한다.